회사에 적응하지 못하는 디자이너

퇴사하기 직전에 이런 고민을 했었다.

1.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가?   

2. 사회로 나올 것인가?


1번은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면서 규칙적인 생활... 혹은 구속받는 생활을 할 것인가?

2번은 (많을지 적을지 모르겠지만) 자유롭게 일하면서 일한 만큼 버는 생활을 할 것인가?


나는 회사를 다니는 규칙적인 생활에 꽤나 적응을 잘했고, 회사에서 평판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 소속이 되어 디자인을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열심히 밤을 새워 디자인을 해도 그것은 내 디자인 같지 않았다. 회사의 부속품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나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롤모델이 없었다. 나의 앞으로 10년 뒤를 예상할 수 있는 회사의 상사들의 삶은 그닥 부럽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10년 버티면 저렇게 될 수 있는건가??라고 상상해봤을 때.. 흠..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고 다양한 도전을 꿈꾸며 무모하게 회사를 때려쳤다. 그때 나이 29세였다. 30세가 되기 전에 뭐라도 될 줄 알았다.

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나의 작업물들을 올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30만원 짜리, 50만원짜리, 100만원 짜리, 200만원 짜리 다양한 작업들을 하면서 생을 이어나갔다. 잠은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자유로웠다. 그러던 중 친구가 좋은 클라이언트를 물어와서 대형 프로젝트를 2~3명이서 진행하기도 했다. 너무 즐겁고 행복했었다. 다양한 일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이상하게도 내 지갑은 언제가 가벼웠다. 누군가는 나의 작업을 보고 부러워했다. 이런 작업을 했냐고 칭찬해주면 그 칭찬이 마약 같았다. 그런 뽕을 맞아가며 열심히 버텼다. 열심히 만 하면 뭐든지 잘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물론 열심히 놀기도 했다. 나를 위한 선물이랍시고, 신용카드를 벅벅 긁어댔고, 항상 마이너스에 시달렸다. 카드론에 현금서비스도 종종 썼다.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분명히 돌아올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나는 점점 궁핍해지는가??


그것들을 알아가고 몸으로 부딛히며 터특해왔다. 다행이도 나는 아직 디자인을 하고 있다. 지금은 7명 규모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던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지금 디자인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꽤 많이 쌓였다. 


회사의 소속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하는 것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는 것은 완전 다른이야기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잘 운영하려면 역설적으로 디자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프리랜서라는 것을 하기 위해 세상에 뛰쳐 나왔던 순간. 디자인이 좋아서 밤새가며 디자인을 했던 순간. 디자인이 발전하지 못해서 책을 읽어가며 길을 찾아가던 순간.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업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2013년에 사업자등록증을 처음내고 지금까지 버텨왔던 이야기들을 이곳에 남겨보려고 한다.